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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 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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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에 해당되는 글 2

  1. 2012.01.31 생각의 단상- 함께 비를 맞는 일
  2. 2012.01.27 뫼비우스의 띠 = 삶의 과정

생각의 단상- 함께 비를 맞는 일

2012.01.31 09:57 | Posted by 속삭임과그대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장영희 교수님은 에세이에서 이 말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우산을 들어주면 둘 다 조금씩이라도 비를 피할 텐데 왜 멀쩡한 우산을 두고 함께 비를 맞아야 하냐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 생각이 공감했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상담하는 일을 하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 그래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우산을 들어주는 것 보다 함께 비를 맞으며 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왔다.

 니들에게는 걱정이겠지. 나만큼 절실해? 나만큼 절망적이야? 나만큼 무서워?”

사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것을 똑같이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인 경우는 더욱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아픔과 상처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말들이 그들에게 하는 것인지 지난 시절 나에게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어쩌면 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의 공감, 나의 진심, 나의 이해가 그들에게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내가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모두 끌어 안아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그들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는 길을 택하겠다. 그것이 비록 힘들고 고단한 길이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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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 삶의 과정

2012.01.27 08:14 | Posted by 속삭임과그대
"한 해의 맨 마지막 계절은 겨울이다. 그리고 한 해의 맨 처음의 계절 또한 겨울이다. 겨울 속에서는 그렇듯 마지막과 처음이 함께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인 이 계절에. 우리는 한 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우듯이 말이다. 할아버지에게 절망은 희망의 다른 말이듯이. 모든 마지막은 모든 처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中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삶의 과정은 연속성을 지닌다. 조금 쉴 수도 있고, 조금 미룰 수도 있지만 무언가가 끝내는 것은 동시에 시작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상대성을 지닌다지만 그런 면에서는 영원성을 지닌 것 같다. 영원이 반복될지도 모르는 궤도의 중간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렵고,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버겁고 지겨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우라니, 가당치도 않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절망 속에 어떻게 희망이 있는가? 절망 속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고독, 외로움, 슬픔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 안에서 희망을 키워낼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절망이 아닌 것이다. 희망이 절망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일 뿐. 연속되는 궤도 안에서 희망과 절망을 구분하지 못 했을 뿐이리라. 

알 수 없다면, 구분할 수 없다면, 확신할 수 없다면-
절망할 것이냐, 희망을 말할 것이냐,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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