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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 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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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다 - 아홉살 인생

2012.02.07 04:07 | Posted by 속삭임과그대

아홉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투명하다. 투명하지 않은 것도 투명하게여과시켜서 바라볼 있는 여민이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의 시각 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시각을 공유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의 색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낄 있었다. 색이 흐릿해진다고 해서 투명해질 수는 없겠지만 흐릿해진 렌즈사이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여민이의 눈에 보이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주인공 여민이 조차도 고뇌에서 자유로울 없다. 아마도아홉이라는 숫자는 향해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과도기의 역할을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스물아홉의 작가가 서른을 향해가는 시점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있을 것이다. 현실을 넘어서서 다른 현실을 동경하게 되는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살이 되었다. 그래서...라고 여운을 남기는 이유..?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 그것은 어느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여민이에게 비춰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극이 되어 독자의 이면에 있는 많은 면들을 투사시킬 있을 비로써 가능해진다. 가장 불쌍해 보이는 사람도, 가장 슬퍼 보이는 사람도, 가장 아이러니해 보이는 사람도, 가장 고상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우리의 그림자 뿐이다.

 

우리는 그림자들의조화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울고, 웃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희망차고, 기쁘다. 하지만 추구해야 한다는 것과 추구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할 . 순간, 순간에 느낄 있는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일부이고,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9 때도, 19 때도, 29 때도, 39 때도, 49 때도 생의 마지막 아홉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삶의 방향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아홉 살에 울타리를 치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다. 인생은 아홉 살에서 끝날 아니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인생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꺼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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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공존에 대하여 - 지킬 박사와 하이드

2012.02.03 03:19 | Posted by 속삭임과그대

선과 악.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그것.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그것의 경계선은 불분명하다. 그 경계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과 학습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자아와 본능을 주관하는 초자아의 영향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초자아는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장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간다고 말했다. 그것은 동양권에서 성악설로 불리는 사상과 동일한 맥락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따른 학습에 의해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악한 면을 억압당하고 그와 반대되는 선한 면은 사회적으로 계속 지지받고 강화 받음으로써 더 의식화되고, 표면화된다는 것이다.

지킬박사도 악한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고 선한 면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표면화 시키면서 살아온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덕망과 명성을 중요시했으며 그에 부합되지 않는 악한 면을 볼 때면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쾌락을 중요시여기고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는 것에 심한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괴리감이 없이 자신의 악한본능을 들어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래서 신비한 약을 발명했으며 그 약을 먹은 후에 변신한 자아를 하이드라 불렀다. 하이드는 그의 내면에 있는 10%정도에 지나지 않는 악한 면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100%악으로만 이루어진 악의 결정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결국 지킬박사는 자신의 이중적인 면이 주는 고통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자신의 삶을 파멸시킨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한 면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아가 분리되는 심한 괴리감을 경험할 것이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면 내 자신의 성향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 귀인 시켜 나의 입장을 합리화시키거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의 모습인양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의 잘못을 반성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내 안에 악하지 않은 선이라고 불릴 수 있는 면도 공존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하지만 악한 면만이 분리되어서 만들어진 하이드에게 '반성'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는 오로지 악에 대해 알 뿐 선에 대한 개념도 인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알 수 없는 불쾌감과 소름끼치는 공포감의 대명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인간에 의해 발명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악의 결정체인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모습을 정당화시켜주고, 오히려 그것이 완벽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만약 지킬박사가 지나치게 한쪽방향만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버리고,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자신에게 내재되어있는 이중성을 인정하면서 조율을 추구했다면 스스로가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욕망은 인간의 본능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그의 도전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상이다. 우리의 이중적인 본능을 조율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든다면, 그것은 ' 반성의 부재'를 낳게 되고, 결국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과 악이 내재된 이중성적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조율하기위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인간만이 완벽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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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 P 331, 작가의 말 中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고, 물건은 팔려고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몸담고 계신 시장판에서 눈동냥하면서 알게 된 것은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치우는 행위가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규칙이다. 그러나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대단한 생존의 규칙이 정말 언짢고 시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말 중에서 저 다섯줄을 읽고, 넋을 놓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오븐과 계란과 설탕과 밀가루가 있는데…….

같은 지구에서 같은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자신의 카스테라를 오븐 밖으로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그 노력의 근원은 원초적인 본능을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과 규칙에서 도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시장’에 대한 악담을 퍼 붓는 사람을 훈계하면서 시장을 찬양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 계약이라는 관념을 ‘시장’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을 끌어안고 있는 덕분에 우리는 때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며!

하지만 당연한 것은 위험하다.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도 평범하고,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카스테라를 만든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저자는 당연한 것을 회피하고, 보편적인 것과 평범한 것을 거부한다. 그의 문체가 그렇고, 그의 사고가 그렇고, 그의 생활이 그렇다. 그것은 마치 세계 최고의 빵집을 운영한다는 푸알 랜이 기존의 제빵사 들을 채용하지 않는 대신 기꺼이 몇 년씩 그의 도제가 되겠다는 청년들을 고용하는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그는 에디슨의 카스테라, 가가린의 카스테라, 지미 핸드릭스의 카스테라, 이백의 카스테라, 제인 구달의 카스테라, 테레사의 카스테라가 탄생을 찬양하고, 기억하며,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인류를 위해서가 아닌(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형편없는 카스테라를 만들었다면 그 실패에 대한 비난은 쏟아지겠지만 그것은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카스테라를 만들어내는 요리법(일종의 아이디어)에 대한 비난이다. 그런 비난을 회피하든, 부인하든, 합리화 시키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런 비난이 또 하나의 요리법을 탄생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맛있는 카스테라를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재료가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작가 박민규 만이 소유하고 있었던 특이한 재료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과제를 이렇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흔해 빠진 카스테라가 아닌,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살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위대한(의미있는) 카스테라의 탄생을 위하여!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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